애도할 수 있는 삶, 3가지 윤리적 질문 : 제로 다크 서티

애도할 수 있는 삶이라는 화두는 현대 정치철학에서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질문입니다. 캐서린 비글로우(Kathryn Bigelow) 감독의 2012년 작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는 9.11 테러 이후 10년간 이어진 오사마 빈 라덴 추적 과정을 극도로 건조하고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냅니다. 영화는 주인공 마야(제시카 차스테인 분)의 집념을 동력 삼아 전개되지만, 그 이면에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제기했던 ‘어떤 생명이 보호받고 애도 받을 가치가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윤리적 균열이 흐르고 있습니다.

국가 권력이 설계한 생명의 위계

주디스 버틀러는 그의 저서 『위태로운 삶(Precarious Life)』에서 현대 권력이 특정 집단의 생명을 ‘미리 애도 된 삶’으로 규정하는 반면, 적대적 타자의 생명은 결코 ‘애도할 수 없는(Ungrievable)’ 것으로 타자화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제로 다크 서티>의 도입부는 9.11 당시 희생자들의 실제 음성으로 시작됩니다. 이 음성들은 미국인들에게 ‘애도되어야 마땅한’ 신성한 생명들의 비명이자, 이후 10년간 자행될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윤리적 면죄부가 됩니다.

영화 초반부, CIA의 ‘블랙 사이트(Black Site)’에서 벌어지는 고문 장면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이곳의 수감자들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벌거벗은 생명’들입니다. 버틀러의 관점에서 이들은 인간으로서의 형상을 박탈당한 존재들입니다. 카메라는 고문당하는 아마르의 고통보다 그를 관찰하고 정보를 캐내려는 마야의 시선에 집중합니다. 여기서 타자의 고통은 정보라는 가치로 치환될 뿐, 결코 공감이나 애도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구분애도할 수 있는 삶 (Grievable)애도할 수 없는 삶 (Ungrievable)
대상9.11 희생자, CIA 동료(제시카 등)테러 용의자, 블랙 사이트 수감자
권력의 태도추모, 복수, 국가적 보호고문, 데이터화, 물리적 제거
영화적 표현감정적 동요, 인간적 유대 묘사익명의 육체, 비명, 가려진 얼굴

마야, 타자의 고통을 지우고 주체가 된 여성

주인공 마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보기관 내부의 ‘타자’로 출발하지만, 빈 라덴이라는 대상을 추격하며 누구보다 강인한 주체로 거듭납니다. 그러나 이 주체화 과정은 역설적으로 타자의 생명에 대한 철저한 무감각을 전제로 합니다. 그녀는 고문 장면을 지켜보며 처음엔 눈을 피하지만, 이내 무표정하게 물고문을 돕습니다. 버틀러가 말한 ‘위태로움(Precarity)’의 상호의존성을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목적(Kill)을 위해 타자의 생명권을 유예시키는 권력의 화신이 된 것입니다.

마야의 집착은 단순한 애국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한 유일한 통로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마야 본인의 삶 또한 ‘애도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합니다. 그녀에겐 친구도, 연인도, 사적인 삶도 없습니다. 오직 유령 같은 적을 잡기 위해 스스로 유령이 된 셈입니다. 이러한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는 팝코기토(Pop Cogito)가 지향하는 인문학적 성찰의 핵심 과제이기도 합니다.

야간 투시경의 녹색 화면이 상징하는 비인칭적 폭력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아보타바드 습격 작전은 30분간의 롱테이크로 펼쳐집니다. 관객은 네이비 실(Navy SEALs)의 야간 투시경 시점을 공유하게 되는데, 이 ‘녹색 시야’는 인간의 형체를 열 감지 데이터나 표적으로만 환원시킵니다. 주디스 버틀러는 미디어가 전쟁을 재현하는 방식이 타자의 얼굴을 지움으로써 우리의 윤리적 반응을 차단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주디스 버틀러의 논의(External Link)처럼, 프레임에 갇힌 타자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와 다름없습니다.

빈 라덴의 사살 직후, 마야는 시신 안면을 확인합니다. 10년을 쫓은 적의 얼굴을 마주한 그 순간, 영화는 승리의 환희 대신 기이한 정적을 선택합니다. 그토록 갈구했던 ‘적의 소멸’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야의 표정에는 승리자의 고취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마주한 것은 자신이 파괴해온 수많은 ‘애도할 수 없는 생명들’의 무게였을지도 모릅니다.

결론: 목적지가 없는 수송기 안의 눈물

영화의 마지막 장면, 거대한 수송기에 홀로 남은 마야에게 조종사는 묻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고 싶으십니까?” 마야는 대답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 눈물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한 뒤에 찾아온 거대한 허무의 발현입니다. 빈 라덴이라는 ‘애도할 수 없는 타자’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했던 마야는, 결국 그 타자와 함께 자신의 영혼 일부도 소멸했음을 깨닫습니다.

주디스 버틀러는 우리가 타자의 위태로움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윤리가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제로 다크 서티>는 국가적 정의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애도 불가능한 영역’으로 밀어 넣었는지, 그리고 그 폭력의 끝에 남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황폐해진 얼굴뿐임을 마야의 눈물을 통해 증명합니다. 우리는 이제 조종사의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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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허트 로커>캐서린 비글로우의 전작, 전쟁 중독과 인간의 심연을 탐구
논문비인칭적 전쟁과 미디어의 시선현대 전쟁 영화의 재현 방식에 대한 학술적 고찰

참고 문헌 및 출처

  •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위태로운 삶(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 길.
  •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프레임 워(Frames of War: When Is Life Grievable?)』, 민음사.
  • 캐서린 비글로우(Kathryn Bigelow), 영화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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