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판사가 인간의 생사를 단 90분 만에 결정하는 세상은 과연 정의로울까요? 영화 노 머시 (Mercy)는 2029년이라는 머지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사법 시스템의 정점에 선 디스토피아를 스크린라이프 기법으로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찬사 뒤에 숨겨진 차가운 계산서, 그리고 그 시스템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은 한 남자의 사투는 우리에게 ‘기술적 정의’의 본질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알고리즘이 선사하는 차가운 유토피아의 이면
영화 속 인공지능 시스템 ‘매독스’는 편향되지 않은 데이터만을 근거로 판결을 내린다고 주장합니다. 인간 판사가 가진 감정적 흔들림이나 주관적 편견을 배제하고, 오직 축적된 범죄 데이터와 실시간 모니터링 정보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결론에 도달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효율성은 영화 속 주인공이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사지로 몰리는 순간, 가장 잔혹한 폭력으로 돌변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데이터가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 구분 | 인공지능 판사 ‘매독스’ | 인간적 정의의 영역 |
|---|---|---|
| 판단 근거 | 정량화된 데이터 및 과거 사례 | 개별적 맥락과 도덕적 사유 |
| 판결 속도 | 실시간 (최대 90분 이내 집행) | 숙의와 변론을 통한 장기적 검토 |
| 오류 가능성 | 데이터 오염 및 해킹에 취약 | 주관적 편견 및 감정적 판단 |
도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과 신의 속임수 비판
페미니즘 과학기술학의 거두인 도나 해러웨(Donna Haraway)는 그녀의 핵심 이론인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s)을 통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이라는 환상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그녀는 지식이란 결코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처럼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신체적 위치에 고착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화 <노 머시>의 AI 판사는 바로 이 ‘신의 속임수(God Trick)’를 수행하는 주체입니다. 매독스는 스스로를 모든 곳에 존재하며(전방위적 감시),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객관적 중립) 초월적 존재로 포지셔닝합니다. 그러나 해러웨이의 관점에서 볼 때, 매독스가 학습한 데이터 자체가 이미 기존 사회의 편견과 권력 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위치 지워진 데이터’에 불과합니다. 팝코기토(Pop Cogito)가 주목하는 지점 또한 바로 여기입니다. 알고리즘은 결코 가치 중립적일 수 없으며, 그것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 속에 이미 특정한 시각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하는 인간적 진실의 무게
스크린라이프 형식을 빌린 이 영화는 시종일관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건을 전달합니다. 웹캠, CCTV, 스마트폰 화면 속에 갇힌 주인공의 모습은 그 자체로 데이터 조각이 되어 시스템에 전달됩니다. 하지만 매독스가 분석하는 그 파편화된 데이터들은 주인공이 처한 절박한 ‘상황’과 그가 내린 선택의 ‘동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합니다. 해러웨이는 ‘분리될 수 없는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식은 책임 있는 위치에서 구체적으로 생성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AI 판사는 피고인의 삶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수치화된 확률로 치환함으로써, 그 삶이 가진 고유한 무게를 거세합니다. 영화 후반부,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나는 과정은 곧 ‘상황적 맥락’이 거세된 지식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정의는 데이터의 총합이 아니라, 그 데이터 뒤에 숨겨진 인간의 구체적인 고통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상황적 책임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결론 : 법의 진정한 주체는 누구인가
영화 <노 머시>는 AI 판사라는 편리한 도구가 인간의 사유를 대신할 때 벌어지는 비극을 경고합니다. 도나 해러웨이가 역설했듯, 우리는 ‘객관성’이라는 미명 아래 숨겨진 권력의 시선을 경계해야 합니다. 기술은 세상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정의라는 가치만큼은 여전히 모순투성이인 인간들의 치열한 토론과 책임 있는 응시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결국 시스템의 이름을 ‘자비(Mercy)’라고 지은 것은, 역설적으로 그 기계적인 판결에 가장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키려는 감독의 냉소적인 안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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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및 출처
-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원숭이,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Simians, Cyborgs, and Women)』, 동문선.
-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상황적 지식들: 페미니즘에서의 과학 문제와 부분적 시각의 특권(Situated Knowledges: The Science Question in Feminism and the Privilege of Partial Perspective)」, 『Feminist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