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베드로 철학적 리뷰를 펼치며, 우리는 핏빛 액션 이면에 숨겨진 현대 사회의 서늘한 민낯을 마주하게 됩니다. 네이버웹툰 『킬러 베드로』(글 김정현, 그림 임리나)는 늙고 쇠약해진 전설의 암살자가 후배들에게 배신당한 뒤, 기적적으로 전성기의 육체를 되찾아 복수에 나서는 서사를 그립니다. 하지만 이 강렬한 복수극을 폴란드 출신의 위대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시선으로 재독(再讀)할 때, 우리는 이 작품이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을 타격하는 날카로운 비평적 텍스트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우만은 오늘날의 사회를 모든 견고한 가치와 제도가 녹아내려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로 명명했습니다. 베드로가 창설하고 헌신했던 암살자 길드 ‘영광’의 붕괴와 타락은, 바로 이 고체적 믿음이 액체적 이기주의로 융해되어 버린 우리 시대의 비극적 우화입니다.
고체의 융해: 증발해버린 ‘영광’의 충성심과 명예
과거의 베드로가 활동했던 시대는 바우만의 개념을 빌리자면 ‘고체 근대(Solid Modernity)’에 해당합니다. 비록 살인을 업으로 삼는 암살자들의 세계라 할지라도, 그곳에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 신의, 그리고 조직을 향한 맹목적일 만큼 단단한 충성심이 존재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고체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길드 ‘영광’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에게 관계란 한번 맺으면 죽음으로만 끊어낼 수 있는 견고한 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영광의 내부 조직원들을 지배하는 논리는 완전히 ‘액체화(Liquefaction)’ 되었습니다. 액체 근대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형태도 고정되지 않으며, 관계는 철저히 소비적이고 일시적인 네트워크로 전락한다는 점입니다. 베드로를 처참하게 짓밟은 후배 암살자들의 배신은 거창한 이데올로기적 대립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스승에 대한 존경이나 조직의 명예는 언제든 더 큰 이익을 위해 폐기 처분할 수 있는 무거운 짐에 불과했습니다. 영원한 유대감이 사라진 자리를 얄팍한 이해타산이 대체한 액체 근대의 도래를, 베드로는 자신의 온몸에 새겨진 치명상을 통해 뼈저리게 체험하게 됩니다.
| 구분 | 베드로의 시대 (고체 근대적 가치) | 후배 암살자들의 시대 (액체 근대적 가치) |
|---|---|---|
| 관계의 성격 | 장기적 결속, 사제지간의 끈끈한 유대, 상호 책임 | 단기적 네트워크, 언제든 해지 가능한 계약, 익명성 |
| 조직의 동력 | 절대적 규칙, 명예, 희생과 헌신 | 개인의 사적 이익,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배신 |
| 존재의 목적 | 전설로서의 입지 구축, 영원한 가치의 보존 | 순간적 권력의 소비, 무한 경쟁 속의 도태 방지 |
유동하는 공포: 불안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자들
길드를 장악하고 베드로를 몰아낸 후배 암살자들은 겉보기에는 승리자이며 포식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감정은 성취감이 아니라 극단적인 불안입니다. 바우만은 이처럼 기댈 수 있는 견고한 닻이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 두려움을 ‘유동하는 공포(Liquid Fear)’라고 명명했습니다. 고정된 규칙이 없는 세계에서는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되며, 내가 남을 짓밟지 않으면 언제든 짓밟힐 수 있다는 강박이 이들을 지배합니다. 웹툰 속 젊은 킬러들이 보여주는 잔혹성과 끝없는 탐욕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거대한 공포에 쫓기고 있는지를 방증합니다. 그들은 타인의 생명을 ‘소비’함으로써 자신들의 생존을 임시로 유예받을 뿐입니다. 우리 팝코기토(Pop Cogito)가 늘 주목해 온 것처럼, 대중문화 속 악당들의 맹목적 폭력성은 종종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신경증에 걸린 현대인의 거울상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많은 피를 흘려 권력을 쥐어도, 모든 것이 유동하는 액체 세계에서는 영원한 안식처를 구축할 수 없다는 비극이 그들을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액체 세계를 얼려버리는 단단한 자아의 귀환
그렇다면 베드로의 귀환이 갖는 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젊은 육체라는 초자연적 선물을 받고 돌아온 베드로는 액체 세계의 방식에 순응하여 그들처럼 교활한 네트워크의 지배자가 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가장 원초적이고 ‘단단한(Solid)’ 무력과 확고한 단죄의 의지를 가지고 이 유동하는 세계를 정면으로 얼려버리며 파괴해 나갑니다. 바우만은 파편화된 개인들이 연대성을 상실한 시대에 윤리적 주체성의 회복을 강조했습니다. 영국 리즈 대학교의 바우만 연구소(The Bauman Institute)에서 논의되는 수많은 과제들 역시, 어떻게 이 액체화된 세계에서 인간이 존엄이라는 변하지 않는 닻을 내릴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타협을 모르는 압도적인 폭력으로 배신자들을 심판하지만, 그 행위의 기저에는 ‘은혜는 갚고 배신은 벌한다’는 가장 고전적이고 확고한 인과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한없이 가볍게 흩날리는 액체 근대의 도덕관념을 향해, 자신의 존재 증명이라는 묵직한 철퇴를 내리치는 통쾌한 철학적 일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파편화된 세계에 던지는 육중한 닻
지그문트 바우만의 통찰을 거쳐 읽어낸 네이버웹툰 『킬러 베드로』는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증발해버리는 액체 근대의 시공간 속에서, 잊혀진 단단한 주체성이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입니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어떤 관계도 보장되지 않는 극단의 불안 사회에서, 베드로는 타인과의 얄팍한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대신 스스로 굳건한 바위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독자들이 베드로의 잔혹한 숙청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악당이 처벌받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변덕스럽고 파편화된 현실 사회에 지쳐버린 우리가, 결코 녹아내리지 않는 견고한 신념과 자기 확신을 가진 초월적 존재의 등장을 무의식적으로 열망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드로의 핏빛 여정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유동하는 세계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당신만의 단단한 닻을 내릴 것인가.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추천 콘텐츠
| 구분 | 제목 | 추천 이유 및 인문학적 접점 |
|---|---|---|
| 웹툰 | 광장 (신지상/김균태) | 과거의 의리와 원칙(고체)이 사라지고 이익만 남은(액체) 조직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복수극. |
| 영화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 전통적인 윤리관과 법질서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혼돈(안톤 쉬거)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고찰. |
| 서적 | 『액체 근대 (Liquid Modernity)』 | 지그문트 바우만이 직접 진단하는 현대 사회의 유동성과 파편화,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 겪는 불안의 근원을 파헤친 명저. |
참고 문헌 및 출처
-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강.
-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유동하는 공포(Liquid Fear)』, 동녘.
-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액체 사랑(Liquid Love)』, 새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