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바이킹스는 단순한 시대극의 스펙터클을 넘어, 이질적인 두 문명이 어떻게 조우하고 충돌하며 서로를 규정해 나가는지를 묻는 묵직한 인문학적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라그나 로드브로크가 이끄는 노스인(Norsemen)들이 잉글랜드 린디스파른의 낯선 해안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것은 그저 지리적인 발견이나 약탈의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라는 거대한 유일신 체계와 북유럽 신화라는 다신교적 자연주의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거대한 세계관의 충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매혹적인 서사를 통해 ‘나’와 다른 존재를 마주했을 때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공포와 호기심, 그리고 폭력적인 규정의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됩니다.
낯선 해안가에 닿은 두 세계의 시선
드라마 속에서 영국 색슨족과 프랑크 왕국의 사람들은 바다 건너에서 온 바이킹들을 ‘이교도’ 혹은 ‘야만인’으로 묘사합니다. 반대로 바이킹의 시선에서 기독교인들은 황금을 성스러운 제단에 방치해 두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약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처럼 각자의 문화적 토대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철저히 왜곡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삶의 방식만이 옳다는 강렬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낯선 타자를 위협적인 괴물로 격하시키는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역사상 수많은 문명의 교차점에서 반복되어 온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이러한 상호 오해는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확립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영국의 왕들은 바이킹이라는 무시무시한 외부의 적을 강조함으로써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을 잠재우고 신앙심을 고취시킵니다. 마찬가지로 바이킹의 전사들은 기독교 세계의 유약함을 조롱함으로써 전장에서 명예롭게 죽어 발할라(Valhalla)로 향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용맹한 가치관을 더욱 단단히 무장합니다. 두 세계는 서로를 부정하면서 역설적으로 각자의 정체성을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문명과 야만을 구분 짓는 권력의 작동 방식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타자화(Othering) 이론을 빌려와 이 거대한 텍스트를 더욱 섬세하게 해체해 볼 수 있습니다. 사이드는 서구 세계가 동양을 열등하고 야만적이며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를 문명적이고 우월한 주체로 확립해 온 인식론적 폭력을 고발했습니다. 비록 시대와 지역적 배경은 다르지만, 드라마 속 기독교 세계가 노스인들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이 타자화의 메커니즘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색슨족은 자신들의 문자와 법률, 그리고 유일신 신앙을 ‘문명’의 척도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척도에 부합하지 않는 바이킹의 구전 문화, 다신교, 피의 독수리 형벌 같은 고유한 풍습들을 맹목적인 ‘야만’으로 환원시켜 버립니다. 이는 타자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자신의 권력 체계 안에서 통제하기 쉬운 개념으로 축소해 버리는 전형적인 타자화의 과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킹 역시 기독교인들을 자신들의 전사적 세계관 안에서 열등한 타자로 규정하며 동일한 인식론적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입니다.
세계관의 충돌과 문화적 인식의 층위
서로를 거울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빚어내는 두 집단의 이분법적 인식 구조는 극의 전반을 지배하는 팽팽한 긴장감의 원천이 됩니다. 다음은 두 세계가 서로를 어떻게 타자화하며 각자의 신념 체계를 공고히 하는지 보여주는 구체적인 층위들입니다.
| 인식의 층위 | 기독교 세계(색슨족)의 시선 | 북유럽 세계(바이킹)의 시선 |
|---|---|---|
| 종교와 신앙 | 이교도들의 신은 악마의 형상이며, 그들의 의식은 이단적인 미신에 불과함. |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나무 십자가에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나약하고 어리석음. |
| 죽음과 전쟁 | 살육을 즐기는 피에 굶주린 짐승들이자, 기독교 세계를 시험하는 신의 징벌. | 죽음을 두려워하며 전장에서 등을 보이는 자들은 발할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겁쟁이들. |
| 가치와 재화 | 수도원의 성물과 문자를 파괴하는 무지한 약탈자들. | 풍요로운 땅과 황금을 소유하고도 방어할 줄 모르는 나약한 소유자들. |
경계를 허무는 이방인들의 영적 교감
그러나 이 견고한 타자화의 장벽에 균열을 내는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기독교 수도사 애설스탠(Athelstan)과 라그나 로드브로크입니다. 애설스탠은 납치된 노예로 시작하여 바이킹의 삶의 방식을 깊이 체험하고, 기독교적 가치관과 북유럽 신화 사이에서 격렬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라그나 역시 단선적인 약탈에 만족하지 않고 기독교 세계의 지식과 문화에 강렬한 지적 호기심을 느낍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며, 마침내 ‘야만’과 ‘문명’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부수고 진정한 우정과 영적 교감을 나눕니다.
이들의 관계는 매우 각별한 인문학적 성찰을 던져줍니다. 팝코기토(Pop Cogito)가 추구하는 사유의 방향성처럼, 진정한 이해는 타자를 내가 정해놓은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자의 세계로 기꺼이 걸어 들어갈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애설스탠의 번뇌와 라그나의 호기심은 집단적인 증오와 편견 속에서도 개인 간의 연대가 어떻게 세상을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눈부신 증거입니다.
결론 : 타자의 얼굴에서 발견하는 우리의 초상
결국 넷플릭스 시리즈 《바이킹스》는 도끼와 방패가 부딪히는 과거의 이야기를 빌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자를 대하는 태도를 묻고 있습니다. 문명과 야만이라는 구분은 결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특정 시대와 권력이 만들어낸 자의적인 경계선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낯선 문화, 이질적인 타인을 마주할 때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야만’으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야 합니다. 서로를 향해 겨누었던 칼끝을 거두고, 두려움 없이 낯선 거울 앞에 서서 그 안에 비친 타자의 얼굴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내면 깊숙이 숨겨진 진짜 우리의 초상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추천 콘텐츠
| 분류 | 콘텐츠명 | 추천 이유 |
|---|---|---|
| 관련 영화 | 노스맨 (The Northman, 2022) | 바이킹 시대의 신화적 세계관과 원초적인 복수의 서사를 압도적인 시각적 고증으로 구현하여, 그들 내면의 정신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돕습니다. |
| 관련 도서 |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 서구가 동양을 타자화하며 권력을 형성해 온 과정을 추적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저로, 문화적 이분법을 해체하는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
📚 참고 문헌 및 출처
-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교보문고.
- 마이클 허스트(Michael Hirst),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바이킹스(Vikings)》 (2013-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