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젝시옹은 매끄럽고 깨끗한 주체의 세계에서 배제되었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경계 주위를 맴돌며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비체(Abject)’들의 역습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라는 화려한 미장센 아래, 이 서늘하고 기괴한 아브젝시옹의 미학을 가장 정교하게 배치한 작품입니다. 귀족적인 아가씨 히데코와 도둑의 딸 숙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거대한 저택은 그 자체로 거대한 경계의 공간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테바는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버려진 오물, 시체, 혹은 금기된 욕망들이 주체의 경계를 위협하며 되돌아오는 순간의 공포를 포착했습니다. 영화 속 코우즈키의 서재는 우아한 낭독회가 열리는 지식의 성전인 동시에, 지하실의 축축한 점액질이 솟아오르는 불결한 자궁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 아름다운 비극 속에 숨겨진 3가지 금기의 실체를 파헤쳐 보려 합니다.
서재라는 판옵티콘과 지하실의 비체들
불가리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저서 『공포의 권력(Pouvoirs de l’horreur)』에서 아브젝시옹(Abjection)을 주체와 대상,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모호한 상태로 정의했습니다. 주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불결한 것(배설물, 시체 등)을 밀어내지만, 그것들은 주체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며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포를 선사합니다.
영화 《아가씨》에서 코우즈키가 집착하는 서재는 완벽한 상징계(Symbolic)의 질서를 대변합니다. 그는 일본식 저택과 영국식 정원을 기형적으로 결합하여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했고, 그 안에서 히데코를 박제된 인형처럼 키워냈습니다. 그러나 그 서재 밑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거대한 문어와 온갖 음란한 상상이 뒤섞인 지하실입니다. 지하실은 코우즈키가 자신의 고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밀어냈으나 결코 포기하지 못한 아브젝시옹의 현신입니다.
히데코는 평생 이 아브젝시옹의 공간에서 죽은 이모의 영혼과 지배자의 시선에 갇혀 살았습니다. 그녀가 읽는 책들은 겉으로는 고전적인 품격을 갖췄지만, 내용은 인간의 가장 말초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추한 것들입니다. 이처럼 우아함과 추함이 한 몸처럼 엉겨 붙은 상태, 그것이 바로 크리스테바가 말한 비체의 공포입니다. 주체는 이 비체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결코 독립적인 자아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금기를 파괴하고 경계를 넘어서는 여성적 유대
영화의 진정한 전복은 숙희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이 폐쇄적인 서재 안으로 침입하면서 시작됩니다. 숙희는 코우즈키의 질서 아래에서는 ‘불결하고 천한 도둑놈의 딸’인 비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히데코의 억압된 욕망을 깨우고, 코우즈키가 신성시하던 서재의 책들을 거침없이 찢고 더럽힙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아브젝시옹을 수용함으로써 가부장적 상징계를 붕괴시키는 혁명적 행위입니다.
이러한 경계의 붕괴와 주체성의 회복은 팝코기토(Pop Cogito)가 대중문화를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변곡점입니다. 두 여성이 서로의 몸을 탐닉하고 비밀을 공유하는 과정은, 남성적 시선이 규정한 ‘성스러운 아가씨’와 ‘천한 하녀’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지워버립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비체가 됨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주체가 됩니다. 크리스테바는 이를 통해 주체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경계를 협상하는 유동적인 존재임을 역설했습니다.
코우즈키가 그토록 두려워하면서도 집착했던 지하실의 문어는 결국 그를 집어삼킵니다. 이는 비체를 통제하려 했던 권력자가 오히려 자신이 밀어냈던 공포에 의해 파멸함을 보여줍니다. 반면, 히데코와 숙희는 서재를 탈출하여 바다로 나아갑니다. 바다는 모든 경계가 녹아내리는 거대한 아브젝시옹의 공간이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모태입니다. 그들은 이제 누군가의 욕망을 연기하는 인형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써 내려가는 주인이 되었습니다.
| 크리스테바의 핵심 개념 | 영화 《아가씨》 속 쉬운 비유 |
|---|---|
| 아브젝시옹 (Abjection) |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신사의 주머니 속에 숨겨진, 곰팡이 핀 낡은 사진처럼 숨기고 싶지만 버리지 못하는 기묘한 애착. |
| 비체 (Abject) | 서재의 우아한 낭독회 소리 뒤로 들려오는 지하실 문어의 기괴한 움직임과 습한 점액질의 공포. |
| 경계의 위반 (Transgression) | 신성한 성전(서재)에 먹물을 뿌리고 귀중한 고서들을 찢어발기며 얻는 쾌감과 자유. |
결국 《아가씨》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고수하고 있는 그 깨끗하고 우아한 삶의 경계 너머에는 무엇을 던져버렸느냐고 말입니다. 우리가 ‘추하다’ 혹은 ‘부적절하다’고 이름 붙여 밀어냈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가장 진실한 욕망은 아니었을까요?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대상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주체는 억압의 사슬을 끊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지하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에 무엇을 가두어 두었든,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당신의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히데코처럼 그 문을 열고 나와 대낮의 햇살 아래서 그 ‘추한 것’들과 함께 춤을 출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인공적인 정원을 넘어 광활한 바다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금기를 깨트린 자만이 마주하는 찬란한 바다
박찬욱 감독은 아브젝시옹의 공포를 미학적 황홀경으로 치환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두 여성이 자유를 만끽하며 멀어지는 배 위에서 나누는 교감은 더 이상 비체가 공포의 대상이 아님을 선언합니다. 금기는 깨졌고, 경계는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두 주체의 순수한 열망뿐입니다.
아브젝시옹은 우리를 괴롭히는 괴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두고 있던 견고한 사회적 틀을 부수는 망치가 되기도 합니다. 《아가씨》가 보여준 전복의 미학을 통해, 우리 삶을 억누르고 있는 무수한 ‘선(Border)’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당신의 서재를 부수고 지하실의 공포를 껴안을 용기가 있다면, 당신 역시 당신만의 오아시스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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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 작품명 (저자/감독) | 추천 이유 및 한 줄 평 | 바로가기 |
|---|---|---|---|
| 도서 | 공포의 권력 (줄리아 크리스테바) | 아브젝시옹 이론의 원전입니다. 주체가 어떻게 불결한 것을 통해 형성되는지 깊이 있게 다룹니다. | 도서 정보 |
| 영화 | 박쥐 (박찬욱) | 신성함과 추함, 성인과 괴물 사이의 경계를 다루며 아브젝시옹의 미학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또 다른 수작입니다. | 영화 정보 |
참고 문헌 및 출처
-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공포의 권력(Pouvoirs de l’horreur)』, 서민원 역, 동문선.
-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사랑의 정신분석(Histoires d’amour)』, 김인환 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