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험난한 시험을 통과하고 마침내 법조인이라는 눈부신 타이틀을 거머쥐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정한 변호사’가 되기를 갈망하며 번뇌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JTBC의 [청춘 법정 드라마] 에스콰이어: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 (2025)은 이미 자신의 자격을 법적으로 증명한 이들이, 다시 출발선에 서서 자신의 업(業)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역설적이고도 아름다운 서사입니다. 화려한 대형 로펌의 위용과 천문학적인 수임료, 그리고 매스컴의 조명을 받는 승소율 뒤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할까요? 이 작품은 기성세대가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자본주의적 사법 시스템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그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윤리적 나침반을 찾으려는 청년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외재적 선에 잠식된 법조계의 서늘한 민낯
이 치열하고도 고독한 성장기를 철학적으로 해부하기 위해, 우리는 현대 공동체주의 철학의 거장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의 벼려진 사유를 경유해야 합니다. 그는 근대 계몽주의 이후 인간의 도덕이 한낱 개인의 취향이나 자본주의적 계산으로 전락했다고 매섭게 비판하며, 고대 그리스 시대의 덕 윤리(Virtue Ethics)를 현대적 맥락으로 복원할 것을 주창했습니다.
매킨타이어 철학의 뼈대에는 실천(Practice)이라는 핵심 개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의미 있는 사회적 실천에는 두 가지 종류의 목적, 즉 선(Goods)이 존재한다고 통찰합니다. 하나는 돈, 명성, 권력과 같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외부로부터 쟁취해야 하는 외재적 선(External Goods)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활동 자체의 본질 속에 내재되어 있어, 실천에 참여하는 공동체 전체의 탁월함을 증진시키는 내재적 선(Internal Goods)입니다.
드라마 속 기성 법조계와 거대 로펌들은 철저하게 외재적 선만을 숭배하는 탐욕의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그곳에서 정의의 수호나 진실 규명이라는 법률가 본연의 내재적 선은 낭만적인 헛소리로 치부되며, 오직 막강한 권력의 변호와 높은 승소율을 통한 자본의 축적만이 지상 과제로 여겨집니다. 갓 변호사가 된 청년들이 마주한 참담한 현실은, 바로 이 내재적 선이 완벽하게 거세된 채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버린 일그러진 실천의 척박한 현장인 것입니다.
| 구분 | 외재적 선 (External Goods) | 내재적 선 (Internal Goods) |
|---|---|---|
| 목표 및 성격 | 수임료, 명예, 권력, 화려한 승소율 | 정의 실현, 진실 규명, 약자 보호 |
| 획득의 방식 | 제로섬 게임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 잃음) | 공동선 증진 (사회 전체가 혜택을 누림) |
| 극 중 상징 | 기성 대형 로펌의 비인간적 성과주의 시스템 | 청년 변호사들이 갈망하는 진정한 직업윤리 |
고립된 원자에서 벗어나, 서사적 자아로 연대하다
이 화려하지만 텅 빈 공허한 로펌의 시스템 속에서, 양심을 간직한 청년 변호사들은 심각한 실존적 분열을 겪습니다. 승소 보너스라는 달콤한 자본의 유혹 앞에서 이들은 억울한 의뢰인의 눈물을 외면해야 하는 끔찍한 딜레마에 빠집니다. 매킨타이어는 인간이 결코 고립되고 파편화된 이기적인 원자적 개인이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우리는 모두 특정한 공동체의 역사와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을 발견하는 서사적 자아(Narrative Self)라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이 기성세대의 부당한 압력과 관행에 맞서 기꺼이 손을 맞잡고 연대하는 과정은, 바로 이 잃어버린 서사적 자아를 벅차게 회복해 나가는 여정입니다. 이들은 서로의 깊은 상처와 고민을 투명하게 나누며, 변호사라는 숭고한 직업이 단순히 거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얄팍한 기술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법치주의의 빈틈을 메워야 하는 공동체적 덕성의 발현임을 스스로 일깨웁니다.
이 청춘들의 끈끈한 연대는 효율성과 이기주의만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균열을 내는 가장 눈부시고 우아한 저항입니다. 혼자만의 영달을 위해 달리는 외로운 경주마가 되기를 단호히 멈추고, 동료와 어깨를 겯고 함께 비바람을 맞겠다는 숭고한 결단. 그것이야말로 매킨타이어가 그토록 애타게 복원하고자 했던 진정한 공동체적 덕성의 눈물겨운 부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실천의 장, 법의 심장 박동을 되살리다
마침내 이 젊은 변호사들은 껍데기뿐인 엘리트라는 안락한 갑옷을 벗어던지고, 법이 미처 보호하지 못하는 척박한 현실의 흙바닥으로 직접 걸어 들어갑니다. 패소할 확률이 높고 번듯한 수임료조차 기대할 수 없는 막막한 사건들에 기꺼이 온몸을 던지는 이들의 모습은, 이기적인 자본의 잣대로 보면 한없이 바보스럽지만 실존적으로는 지극히 숭고합니다. 이 무모한 도전은 외재적 선의 암세포에 병들어 있던 법조계에 진정한 내재적 선을 수혈하는 위대한 구명 활동입니다.
죽어있는 법률의 텍스트에 뜨거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따뜻한 심장과 치열한 윤리적 결단입니다. 저희 팝코기토(Pop Cogito)가 이 청춘들의 불안하고도 눈부신 발걸음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법전을 앵무새처럼 외우는 기계가 아니라, 타인의 처절한 고통 앞에서 온몸으로 응답하는 진정한 의미의 도덕적 주체로 스스로를 날카롭게 벼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 다시, 벅찬 가슴으로 변호사를 꿈꾸어야 할 시간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좌충우돌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던지는 묵직하고 서늘한 윤리적 질문입니다. 빛나는 자격증이나 두둑한 통장 잔고가 우리 존재의 본질을 결코 대변할 수 없듯, 까만 법복을 입었다고 해서 저절로 정의로운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직업윤리란 안락한 타협의 순간에 기꺼이 불편한 진실의 편에 서기를 선택하는, 매일매일의 고단하고 뼈아픈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됩니다.
비록 이들이 걷기로 선택한 길이 끝없는 가시밭길이고 끊임없이 넘어지며 무릎이 깨질지라도, 이 청춘들의 무모한 반항을 통해 법의 멈췄던 심장은 비로소 다시 뜨겁게 고동치기 시작합니다. 외재적 선의 달콤한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정의라는 고결한 내재적 선을 향해 흔들리면서도 꿋꿋이 나아가는 이들의 굳건한 연대. 그것은 이 삭막한 자본주의의 겨울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위로와 벅찬 희망의 온기를 선사합니다.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추천 콘텐츠
| 분류 | 작품 및 저서명 | 추천 사유 |
|---|---|---|
| 영화 | 어 퓨 굿 맨 (A Few Good Men, 1992) | 명예와 위계질서라는 외부적 압력 속에서 진실이라는 내재적 선을 파헤치는 청년 군법무관의 치열한 법정 투쟁을 웅장하게 그린 명작. |
| 영화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The Trial of the Chicago 7, 2020) | 국가의 폭력적인 사법 시스템에 맞서 신념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연대하는 이들의 빛나는 법정 실화를 바탕으로 한 텍스트. |
| 도서 | 덕의 상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 도덕적 파편화가 극에 달한 현대 사회를 예리하게 진단하고, 공동체주의와 덕 윤리의 부활을 주창한 매킨타이어의 기념비적 철학서. |
참고 문헌 및 출처
-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덕의 상실 (After Virtue)』, 문예출판사.
-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누구의 정의인가? 어떤 합리성인가? (Whose Justice? Which Rationality?)』, 철학과현실사.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와이즈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