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사는 기사 비평을 시작하며, 우리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한계와 절망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현민, 가나라 각색, 이안 작화의 네이버 웹툰 『오늘만 사는 기사』는 흔한 판타지 회귀물의 문법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뼈를 깎는 고통과 죽음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쉽니다.
주인공 엔크리드는 천재적인 재능도, 위대한 운명도 타고나지 못한 그저 평범한, 혹은 그보다 못한 병사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참혹하게 죽어가는 ‘오늘’이라는 전장의 시간뿐입니다. 이 무한히 반복되는 도살장 같은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끔찍한 굴레를 인문학적 프레임으로 해체하기 위해, 우리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문학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사유를 소환해야만 합니다. 그의 시선은 엔크리드가 흘리는 피와 땀을 단순한 장르적 쾌감이 아닌, 위대한 인간 승리의 철학적 알레고리로 승화시킵니다.
세계의 침묵과 죽음의 굴레, 부조리의 발견
카뮈 철학의 출발점은 세계의 합리성을 갈구하는 인간의 이성과, 그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는 무의미한 우주 사이의 대립인 ‘부조리(Absurde)’입니다. 인간은 삶의 의미와 인과율을 찾고자 발버둥 치지만, 세계는 차갑고 맹목적일 뿐입니다.
엔크리드가 처한 상황은 이 부조리한 조건의 극단적 축소판입니다. 그가 마주한 전장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의 폭풍이며, 그의 죽음에는 어떠한 숭고한 의미나 구원도 뒤따르지 않습니다. 그저 목이 잘리고, 심장이 뚫리는 고통스러운 감각만이 진실입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엔크리드는 세계가 자신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취약하고 무의미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자각합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 끔찍한 부조리의 인식 앞에서 미쳐버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이탈(자살)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서사가 위대한 이유는 주인공이 절망이라는 이름의 심연에 잡아먹히기를 거부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도망치는 대신,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을 택합니다.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실존적 층위 | 카뮈의 철학적 개념 | 작품 속 엔크리드의 양상 |
|---|---|---|
| 세계의 상태 | 부조리 (Absurde) | 이해할 수 없는 폭력과 반복되는 전장의 죽음 |
| 인간의 조건 | 시지프스의 형벌 | 재능의 한계 속에서도 매일 다시 검을 들어야 하는 운명 |
| 극복의 방식 | 반항 (Révolte) | 죽음의 기억을 땔감 삼아 육체의 한계를 베어내는 의지 |
무너져 내리는 바위와 다시 들어 올리는 검, 시지프 신화
카뮈는 에세이 『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를 통해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지만, 정상에 닿는 순간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지고 이를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카뮈는 이 신화적 인물을 현대인의 운명, 나아가 부조리한 영웅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엔크리드의 시간은 정확히 시지프스의 바위와 같습니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적의 패턴을 외워도, 결국 압도적인 힘 앞에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눈을 뜨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뼈저린 자각의 순간입니다. 시지프스가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바라보며 산을 내려갈 때 느끼는 그 끔찍한 의식의 명료함이, 엔크리드가 막사에서 거친 숨을 내쉬며 깨어날 때마다 반복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크리드는 산을 오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육체는 비루하고 천재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수천 번의 죽음을 통해 강철보다 단단하게 제련됩니다. 바위가 굴러떨어지면 다시 밀어 올리듯, 그는 팔다리가 잘려나가면 다시 다음 생에서 검을 쥡니다.
절망을 베어내는 고귀하고도 맹렬한 실존적 반항
이 지점에서 카뮈가 말한 ‘반항(Révolte)’의 개념이 찬란하게 빛을 발합니다. 카뮈에게 반항이란 구원이나 내세를 향한 헛된 희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짓누르는 부조리한 운명을 긍정하고, 그 운명에 굴복하지 않은 채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내는 의지입니다.
엔크리드는 시스템(회귀)이 주는 편의에 기대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천재들처럼 한 번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기에, 그저 어제보다 단 한 뼘 더 검을 내밀고, 단 1초 더 살아남기 위해 죽음의 감각을 스스로의 신경계에 새겨 넣습니다.
그의 검술은 재능의 산물이 아니라, 무수한 죽음과 찢겨나간 살점들이 쌓아 올린 맹렬한 실존의 증명입니다. 이것은 부조리한 세계가 내린 사형 선고에 대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한 인간의 가장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시위입니다.
저희 팝코기토(Pop Cogito)가 대중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추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고귀함’입니다. 엔크리드의 여정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끝을 알면서도, 매일 무너져 내릴 것을 알면서도 당신은 오늘 하루의 바위를 밀어 올릴 수 있는가?
결론 : 우리는 핏물 속의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라고 선언했습니다.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위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시지프스는 형벌의 노예가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웹툰 『오늘만 사는 기사』의 엔크리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그의 온몸이 피와 오물로 뒤덮여 있고, 내일의 태양을 기약할 수 없는 절망적인 오늘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짐승처럼 포효하며 적을 향해 검을 내지르는 그 순간만큼 그는 그 누구보다 위대하고 자유롭습니다.
천재들의 화려한 영웅담이 판치는 시대에, 재능 없는 범재가 오직 죽음과 고통을 땔감 삼아 부조리에 맞서는 이 서사는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죽음 같은 현실에서 눈을 뜨며 지독한 피로감을 느끼지만, 엔크리드가 쥔 부러진 검을 통해 다시금 우리의 삶이라는 바위를 밀어 올릴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추천 콘텐츠
| 구분 | 제목 | 추천 사유 |
|---|---|---|
| 도서 |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 부조리와 실존적 반항의 개념을 확립한 철학 에세이 |
| 영화 | 『엣지 오브 투모로우』 | 죽음과 회귀를 통한 극단적 육체 학습의 또 다른 서사 |
| 아티클 | 팝코기토: 재능주의 사회를 부수는 범재들의 서사학 | 노력과 재능의 상관관계를 인문학적으로 분석한 칼럼 |
참고 문헌 및 출처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 민음사.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반항하는 인간(L’Homme révolté)』, 민음사.
- 이현민·가나라(각색), 이안(작화), 『오늘만 사는 기사』, 네이버 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