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3가지 진실의 심연

드라마 괴물은 단순한 연쇄살인마 추적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가 괴물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공동체의 기만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제물로 삼는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탐구하는 심리 스릴러입니다. 특히 만양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동식(신하균 분)이 겪어온 20년의 세월은 르네 지라르(René Girard)희생양 메커니즘(Mécanisme du bouc émissaire)을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구현해 냅니다.

만양이라는 이름의 가짜 평화와 희생양의 탄생

르네 지라르는 사회적 갈등과 모방 욕망이 극에 달해 공동체가 붕괴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한 명의 ‘희생양’을 지목한다고 말합니다. 그 한 사람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를 제거하거나 배척함으로써 공동체는 일시적인 평화와 결속력을 얻습니다. 이를 통해 폭력의 에너지가 한곳으로 집중되어 집단 내부의 분열을 막는 것입니다.

드라마 괴물 속 만양 사람들에게 이동식은 바로 그 희생양이었습니다. 20년 전 이동식의 동생이 실종되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만양은 슬픔에 빠지기보다 ‘누가 우리 마을의 평화를 깼는가’에 더 집중했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가깝고도 이질적인 존재였던 이동식을 범인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자신들의 안녕을 보장받으려 했습니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동식이 범인이어야만 하는’ 사회적 요구가 발생한 것입니다.

만양 공동체의 결속을 지탱하는 배제의 논리

지라르의 이론에 따르면 희생양은 공동체의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이동식은 만양에서 나고 자란 이웃이지만, 동시에 끔찍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꼬리표를 단 이방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동식아’라고 친근하게 부르면서도, 동시에 그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의심하며 공동체의 경계선 밖으로 밀어냅니다.

단계희생양 메커니즘의 전개드라마 괴물 속 적용
미분화 단계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불안 고조연쇄 실종 사건으로 인한 마을의 공포와 불신
희생양 선정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타겟 지목이동식을 유력 용의자로 몰아가는 여론 형성
폭력의 만장일치집단적 박해를 통한 결속이동식을 배척하며 유지되는 기만적 이웃 관계
가짜 평화희생을 통한 일시적 질서 회복실종 사건을 묻어두고 살아가는 20년의 침묵

이러한 폭력의 만장일치는 만양 사람들에게 기묘한 동질감을 부여합니다. 그들은 이동식을 비난하며 자신들은 ‘정상적인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이는 팝코기토(Pop Cogito)가 늘 경계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어떤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충분한 근거 없이 누군가를 괴물로 규정함으로써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한주원이라는 외부자의 시선과 네트워크의 균열

이 견고한 희생양 메커니즘에 균열을 내는 인물이 바로 이방인 한주원(여진구 분)입니다. 그는 법과 원칙이라는 외부의 시선을 가지고 만양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함구해왔던 침묵의 카르텔을 뒤흔듭니다. 한주원은 이동식을 의심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그 의심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이동식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공모하여 만들어낸 추악한 괴물의 형상이었습니다.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범인이 누구인가보다 ‘누가 범인을 돕고 방조했는가’에 집중합니다. 지역 개발이라는 이기심, 자식의 허물을 덮으려는 부모의 일그러진 사랑, 그리고 경찰 조직의 안위를 위한 은폐 등이 얽혀 거대한 괴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르네 지라르가 말한 ‘박해의 텍스트’가 어떻게 쓰이는지 드라마는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결론 : 우리 시대의 희생양과 괴물의 정체

드라마 괴물은 결말에 이르러 진정한 속죄와 사과를 묻습니다. 희생양이었던 이동식이 비로소 그 멍에를 벗어던질 때, 만양의 가짜 평화는 산산조각이 납니다. 진실은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통과해야만 진짜 인간의 얼굴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은 강조합니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Mécanisme du bouc émissaire)은 오늘날의 온라인 혐오와 ‘마녀사냥’ 문화에도 유효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손쉽게 악마화하고 배척할 때, 우리는 실은 우리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제물을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진짜 괴물은 소수의 범죄자가 아니라, 그 범죄를 배양하고 묵인하며 타자를 제물 삼는 공동체의 이기심 그 자체일 것입니다.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추천 콘텐츠

분류콘텐츠명추천 이유
관련 영화도그빌 (Dogville)폐쇄적인 마을 공동체가 외부인을 어떻게 착취하고 희생양으로 삼는지 극한의 실험적 연출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관련 도서희생양 (Le Bouc émissaire)본 칼럼의 핵심 이론인 르네 지라르의 저서로, 신화와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박해와 희생의 구조를 심도 있게 다룹니다.

📚 참고 문헌 및 출처

  •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희생양(Le Bouc émissaire)』, 민음사.
  •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폭력과 성스러움(La Violence et le Sacré)』, 민음사.
  • 심나연 연출, 김수진 극본, JTBC 드라마 『괴물』(2021).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