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법은 종종 가장 완벽한 이성과 정의의 구현체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법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러야 할까요? 정종택 작화의 학원폭력 웹툰 촉법소년은 피비린내 나는 사적 제재의 쾌감 이면에 도사린 무겁고도 서늘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가혹한 괴롭힘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소년법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가해자들을 직접 처단하는 이 잔혹한 복수극은, 단순히 눈에는 눈이라는 원초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법과 제도가 어떻게 또 다른 거대한 억압으로 기능하는지 고발하는 아주 정교하고 서늘한 텍스트입니다.
주관적 폭력의 이면에 숨겨진 기만적인 평온
이 참혹한 핏빛 서사를 해체하기 위해 우리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예리한 통찰을 빌려와야 합니다. 지젝은 그의 저서에서 폭력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타격을 주관적 폭력(Subjective Violence)이라 명명합니다. 작품 속 일진들이 주인공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구타, 갈취, 그리고 물리적 린치가 바로 이 주관적 폭력에 해당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너무나도 쉽게 피가 튀고 비명이 오가는 이 주관적 폭력의 잔혹함에만 머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젝은 진짜 끔찍한 괴물은 그 배경에 교묘하게 숨어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주관적 폭력을 가능하게 하고, 심지어 그것을 묵인하며 재생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객관적 폭력(Objective Violence)이라고 부릅니다. 이 객관적 폭력은 다시 언어와 이데올로기에 내재된 상징적 폭력과, 경제적·정치적 시스템 자체가 뿜어내는 체제적 폭력(Systemic Violence)으로 나뉘어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 폭력의 유형 (지젝의 분류) | 작품 내 구체적 발현 양상 | 가해의 주체 및 결과 |
|---|---|---|
| 주관적 폭력 (Subjective Violence) | 일진들의 무자비한 학교 폭력과 괴롭힘, 주인공의 물리적 복수 | 눈에 보이는 명확한 행위자 존재, 직접적인 신체적·정신적 상해 발생 |
| 상징적 폭력 (Symbolic Violence) | 피해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강요, “맞을 만해서 맞았다”는 언어적 낙인 | 언어와 인식의 틀을 통한 폭력 정당화,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2차 가해 |
| 체제적 폭력 (Systemic Violence) | 가해자를 맹목적으로 보호하는 ‘소년법’과 이를 방관하는 사법 시스템 |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 권력, 피해자의 일상과 존엄성을 합법적으로 파괴 |
체제적 폭력으로서의 소년법, 그 잔혹한 이데올로기
작품 속에서 가장 끔찍하고 절망적인 순간은 가해자들의 주먹이 안면으로 날아올 때가 아닙니다. 끔찍한 지옥을 견디다 못해 마지막 희망을 품고 도움을 요청한 공권력과 사법 시스템이, ‘촉법소년’이라는 법적 명목 아래 가해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만을 내릴 때 주인공의 영혼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붕괴됩니다. 소년법은 본래 미성숙한 청소년을 보호하고 교화하기 위해 제정된 근대법의 인도주의적 성취입니다. 그러나 지젝의 냉소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약자를 구원하지 못하는 이 맹목적인 인도주의야말로 가장 위선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적 폭력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국가와 법은 겉으로는 질서와 평화를 완벽하게 유지하는 척하지만, 그 이데올로기적 ‘정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피해자의 피 묻은 비명과 고통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은폐해 버립니다. 주인공이 겪은 끔찍한 지옥은 단순히 질 나쁜 소년들만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무관심과 법의 치명적인 맹점이라는 시스템이 빈틈없이 맞물려 작동한 필연적인 결과물인 것입니다. 가해자들은 소년법이라는 체제적 폭력을 거대한 갑옷처럼 입고 주관적 폭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괴물이 되었습니다.
결국 주인공이 도덕적 타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적 제재를 결심하고 피 묻은 주먹을 쥐게 되는 행위는, 자신을 철저히 유기하고 지켜주지 않은 위선적인 국가 체제에 대한 처절한 선전포고와 다름없습니다. 그는 폭력으로 폭력을 징벌함으로써, 시스템이 감추고자 했던 모순을 낱낱이 들추어냅니다.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붕괴와 사적 제재의 딜레마
그렇다면 우리가 주인공의 잔혹하고 무자비한 복수극을 보며 강렬하게 열광하고 일말의 통쾌함마저 느끼는 윤리적 모순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환상(Ideological Fantasy)이 박살 나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법은 정의롭고 국가는 반드시 선량한 약자를 보호한다’는 안락한 환상 속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웹툰은 주인공의 자비 없는 복수 과정을 통해 그 법치주의의 환상이 현실에서 얼마나 허구적이고 무력한 기능인지 잔인하게 까발립니다.
지젝은 진정한 사유의 출발점이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상징계의 평온한 틈새를 찢고 나오는 끔찍한 실재(The Real)를 정면으로 대면하는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잉태된 이 괴물 같은 복수귀는, 바로 우리 사회가 억압하고 외면하려 했던 불편한 진실 그 자체입니다. 저희 팝코기토(Pop Cogito)가 집요하게 탐구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성찰 역시 이 맥락과 닿아있습니다. 편안한 이데올로기의 요람에서 빠져나와, 시스템의 결함이 만들어낸 폭력의 지독한 연쇄 고리를 눈 감지 않고 직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구조적 맹목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는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첫걸음일 것입니다.
결론 : 폭력의 근원을 향한 서늘하고도 묵직한 고발장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단순히 악당을 피 흘리며 응징하는 1차원적인 카타르시스적 오락물에 머물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던져가며 써 내려간 처절한 복수극은 피로 쓴 거대한 사회적 고발장입니다. 가해자의 육체를 무참히 파괴하는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을 역설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더 거대하고 일상적인 체제적 폭력의 끔찍한 기만성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핏빛 여정이 스크롤의 끝에서 마무리된 후에도 가슴을 짓누르는 묵직한 질문과 홀로 마주해야 합니다. 괴물을 처단하기 위해 스스로 더 잔혹한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소년의 비극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눈앞에 보이는 얄팍한 폭력을 도덕적으로 규탄하기 이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폭력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하고 있는 우리의 나태한 정의감을 먼저 뼈아프게 되돌아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추천 콘텐츠
| 분류 | 작품 및 저서명 | 추천 사유 |
|---|---|---|
| 영화 |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2002)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적 복수가 어떻게 관련된 모든 개인을 파멸로 이끄는지 보여주는 건조하고 서늘한 구조적 비극. |
| 영화 | 엘리펀트 (Gus Van Sant, 2003) |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루며, 일상화된 학교 내 폭력과 괴롭힘이 낳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순간을 응시함. |
| 도서 | 폭력에 대한 6가지 성찰 (슬라보예 지젝) | 우리가 일상에서 간과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 폭력’의 실체를 명확하게 분석하고 해부한 지젝의 대표적 이론서. |
참고 문헌 및 출처
- 슬라보예 지젝, 『폭력 (Violence: Six Sideways Reflections)』, 난장.
-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새물결.
-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On Violence)』,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