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헌터, 3가지 시선으로 해부한 악의 평범성

마인드헌터 비평의 시선으로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가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헌터』를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가 굳게 믿어왔던 선악의 경계가 얼마나 허술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는 서늘한 체험입니다. 1970년대 후반, ‘연쇄살인(Serial Murder)’이라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시대에 FBI 행동과학부 요원들은 악의 뇌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끔찍한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우리는 이 차가운 취조실의 풍경 속에서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중 한 명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가장 논쟁적인 사유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가 예루살렘의 전범 재판소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보며 주창했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은, 역설적이게도 이 드라마 속 흉악범들의 기괴한 일상성을 해부하는 가장 완벽한 해부용 메스가 되어줍니다.

괴물의 신화를 파괴하는 기괴한 일상성

FBI 요원 홀든 포드가 교도소 면회실에서 처음 마주한 연쇄살인범 에드 켐퍼의 모습은, 대중 매체가 주입해 온 전통적인 ‘악마’의 형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는 2미터가 넘는 거구에 어머니의 머리를 자른 끔찍한 살인마이지만, 수사관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달걀 샐러드 샌드위치를 권합니다. 그는 자신의 끔찍한 범행을 마치 자동차 수리 과정을 설명하듯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의 핵심은, 거대한 악을 저지르는 주체가 반드시 뿔이 달린 괴물이거나 사이코패스적 광기에 휩싸인 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히만이 상부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한 성실한 관료였던 것처럼, 에드 켐퍼나 제리 브루도스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 역시 그들의 고립된 내면세계 안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합리적인(그들만의 기준으로) 규칙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피가 튀는 시각적 잔혹함에서 오지 않습니다. 가장 끔찍한 악의 실체가 샌드위치, 구두, 그리고 유쾌한 농담과 같은 지극히 세속적인 일상의 파편들과 뒤섞여 있다는 사실, 그 ‘이질적인 결합’이 자아내는 철학적 공포입니다. 악은 우리와 완전히 단절된 심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 바로 옆에 아주 지루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언어의 타락과 사유의 불능성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추동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사유의 불능성(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공감 능력의 철저한 부재를 꼽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언어의 타락’을 동반합니다. 극 중 연쇄살인범들이 내뱉는 언어를 가만히 들어보면, 그들은 철저히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채 기계적인 클리셰와 자기 연민의 언어만을 반복합니다.

그들은 희생자의 고통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상상력도 발휘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겪은 억압과 욕망의 좌절에 대해서는 유창하게 웅변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는 자가 구사하는 화려한 어휘들은 그 자체로 공허한 소음이자, 인간성을 상실한 껍데기들의 파열음과 같습니다. 홀든의 녹음기에 담기는 것은 결국 타자와의 소통이 완벽하게 단절된, 병적인 나르시시스트들의 독백일 뿐입니다.

더욱 섬뜩한 것은 홀든 포드라는 수사관 주체의 변화입니다. 초기에는 학술적 호기심과 도덕적 사명감으로 접근했던 그가, 살인범들과 대화를 거듭할수록 점차 그들의 저속한 언어와 논리를 내면화하기 시작합니다. 범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흉내 내던 홀든은, 어느새 수사 국면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 오만함과 폭력성을 체화하게 됩니다.

구분전통적 신화 속의 악 (괴물)마인드헌터가 묘사한 실재 (평범성)
악의 외형광기, 분노, 비정상적인 외양정중한 태도, 평범하고 세속적인 모습
사용하는 언어짐승의 포효, 이해할 수 없는 궤변고도로 논리적인 어휘, 클리셰와 자기 연민
폭력의 동인선천적인 악마성, 순수한 파괴 충동사유의 불능성,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심연을 대면하는 권력의 부조리

팝코기토(Pop Cogito)가 주목하는 이 시리즈의 가장 비판적인 은유는, FBI라는 거대한 국가 기관이 이 ‘평범한 악’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초반에 이단아 취급을 받던 행동과학부는 그들의 연구가 범죄 예방과 범인 검거에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자 거대한 예산과 권력을 부여받습니다. 시스템은 악의 본질적 치유보다는, 악을 ‘분류하고 통제할 수 있는 데이터’로 만드는 데 더 큰 목적을 둡니다.

살인마들의 기괴한 일상성을 학문적 데이터로 변환하는 과정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밟습니다. 하지만 그 합리성의 이면에는 사회가 배태한 병리적 현상을 개인의 특이성으로 치부해 버리려는 근대 국가의 생명정치적 통제가 숨어 있습니다. 텐치 요원의 양아들이 보여주는 섬뜩한 이상 행동은, 행동과학부의 완벽해 보이는 이론적 통제망이 정작 가장 가까운 일상의 붕괴는 막아내지 못함을 뼈아프게 폭로합니다.

결론 : 녹음기 너머로 들려오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

시즌 1의 결말부, 홀든은 에드 켐퍼의 병실을 찾아갔다가 그 거대한 살인마의 끔찍한 포옹을 받게 됩니다.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악이 실은 언제라도 자신을 짓누를 수 있는 물리적 실체였음을 깨닫는 순간, 홀든은 공황 발작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립니다. 이는 오만한 이성으로 심연을 계측하려던 근대적 주체의 철저한 패배 선언입니다.

데이비드 핀처는 한나 아렌트의 철학적 경고를 시각 매체로 가장 서늘하게 번역해 냈습니다. 악은 절대 타자화할 수 있는 기형적인 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유하기를 멈추는 순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논리 안에 갇히는 순간,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언제든 부화할 수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가능성입니다.

결국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그 건조한 취조실 안에서 홀든이 마주했던 것은 끔찍한 살인마들의 고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근원적인 공허함 그 자체였습니다. 『마인드헌터』는 묻고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는 과연 저 취조실 너머의 살인마들보다 얼마나 더 치열하게 ‘사유’하고 있는가. 녹음기의 붉은 불빛이 우리를 향해 조용히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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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및 출처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김선욱 역, 한길사.
  • 존 더글라스·마크 올셰이커, 『마인드헌터』(Mindhunter), 류현 역, 알마.
  • 미셸 푸코, 『비정상인들』(Les Anormaux), 박정자 역,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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